고양이/서리관찰일지

고양이 약 먹이기 (캡슐로 먹이기)

planeswalker 2011. 5. 26. 11:34

이번에 앓으면서 서리 약도 참 오래 먹었다.
처음에 주었던 캡슐이 사이즈가 커서 불편했었는지 (약먹은 후 구토의 원인도 캡슐로 추측하고 있다) 약을 먹는 것에 대해 이전과 다르게 예민하게 반응했던 서리.

약 먹이려고 꺼내기만 해도 도망다니기, 입안에 던져 넣은 캡슐 혀로 밀어서 뱉어내기, 혹은 입안에 숨기고 있다가 내가 손을 놓자마자 퉤-하고 뱉어내기 -_-; 뱉어내다가 입안에 붙어서 이빨로 씹다가 캡슐 터져서 게거품 물며 뛰어다니기 등등...
난데 없는 약먹이기 전쟁이 있었다. 안 그러던 애가 그러니 고양이도 스트레스, 나도 스트레스.

3년전과 다른 점이라면, 게거품 질질 물면서 돌아다니거나 싫다는거 억지로 붙잡고 약 먹였다고 해서 겁을 먹거나 삐지거나 하진 않았다는거. 한 10초간 원망하는 눈으로 쳐다보긴 했지만...;; 그래, 우리가 이런걸로 서먹서먹해질 시기는 지났지... 하지만 왠지 그게 더 얄미운 것이다. 정말 무서워서 그런게 아니라 단지 자기 하기 싫은 건 절대 하기 싫어서 앙탈 부리는 거 같아서 말이다. 이럴 때 나오는 뺀질한 성격-_- 하긴, 강제로 입 벌려서 뭔가가 들어오고 목구멍으로 꿀떡 넘어가는데 기분이 좋을린 없겠지.


이런 고집 센 서리 이번에 약먹이면서 느꼈던 점

니 고집보다 내 고집이 더 세다
아무리 고집부리고 뱉어내도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해서 먹인다. 어떻게 해서든 약은 먹게 되어 있다고 학습하게 되면 그나마 반항이 좀 덜해진다. 그리고 중요한 것, 고양이가 아무리 힘들게 해도 절대 화 내지 말자. 약 먹는 것에 대해 좋은 기억은 만들어주지 못하더라도 싫은 기억을 만들어주면 안된다. 속으론 열불이 나도 어르고 달래서 먹이는 게 훨 낫다.

간식 제공
캡슐 강제 급여하고 목구멍에 붙지 않고 잘 넘어가도록 물을 먹이라고 했었는데, 물까지 강제로 먹였다간 도리질을 할거 같아서 약을 먹이자마자 쉐바 한 두개씩을 주었다. 약 먹일땐 싫어해도 일단 삼키고 나면 간식 달라고 다리에 부비부비하는 냥이를 볼 수 있음.

도구 사용
하도 뱉어내서 그 동안 사 놓고 한번도 안 써본 알약 디스펜서를 사용해봤는데 처음 2-3번 정도까지만 효과가 있었고, 나중엔 오히려 역효과였다. 디스펜서가 생각보다 커서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더 겁을 먹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손가락에 빵꾸날 각오하고 손으로 먹였다. 입안에 뭔가 들어오면 무의식적으로 씹으려고 하기 때문에, '재수 없으면 다치는 거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약 먹이기에 임하자. 사실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머리를 고정하고 송곳니만 조심하면 크게 다칠 일은 없다.

캡슐 코팅
하도 먹이기 힘들어 이번에 처음 시도해 본 것인데... 오오...이것은 신세계!! 캡슐은 물(침)이 닿으면 끈적해져서 여기저기 잘 붙고 딱딱해지지만, 식용유에 캡슐 표면을 조금 코팅해서 급여하면 입안에서 붙는 일 없이 잘 미끄러진다. 혀 안 쪽으로 밀어넣기도 훨씬 편하다. 고양이가 삼키기도 훨씬 쉬울 것이다.  

재빠르고 노련한 솜씨
가장 좋은 케이스는 고양이 잡아서 자세 잡고 입 벌리고 캡슐 투하한 후에 삼키기까지의 시간이 최소한이면 된다. 뭔가 들어온거 같은데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삼켜버렸다. 고양이 입장에선 기분이 좀 드럽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 아프거나 쓴 맛이 나지 않으므로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약 먹이는 사람이 머뭇머뭇하고 겁내하면 고양이도 덩달아 어디 도망갈 틈 없나, 이 인간이 뭔가를 먹이려고 하는데 절대 삼키지 말아야지, 라는 딴 생각을 하게 되므로 먹일때는 과감하게 입 열고 캡슐 투하 바로 닫고.
자꾸 뱉어내는 경우는 캡슐이 입 안 깊이 안 들어간 경우다. 혀 안 쪽 깊이 손가락으로 밀어 넣어주면 아무리 낼롬낼롬해도 밖으로 꺼낼수가 없어 결국 삼키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역시 신뢰
처음 데려왔을 때 약 강제 급여는 생각도 시도도 못했던 일이다. 사람이 이상한 짓은 할 지언정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는 믿음을 고양이가 갖고 있으면 무척 쉬운 일이다. 신뢰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주는 것이지만, 평소에도 자주 입을 벌려보면 거부감은 훨씬 덜해진다.



이번에도 순딩이 서리한테 정말 고마운건,
아무리 싫다고 발버둥치고 도리질 하고 생난리를 피웠어도 발톱 한번 안 세운거... 한달이 넘게 약 먹이면서도 난 스크래치 하나, 구멍 하나 안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