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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사료서리일기

서리 실종 사건의 전말


간만에 또 식겁한 이야기.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는데 애가 갑자기 없어졌다. 화장실 가러 베란다에 나간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들어오길래, 얼른 옷을 입고 나가보니 온데 간데 없다. 분명 씻고 나와서 물에 젖은 바닥의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애를 세워서 내보낸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 자취를 감춘 것이다.

냉장고 뒤, 침대 맡 틈, 책상 뒤, 냉장고 위, 항상 궁금해서 들여다보았으나 바리케이트로 못 들어가게 막아놔서 빈정상했던 베란다 수납장 아래까지, 이름을 부르며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누런 털조각 하나 보이지도 않고.

냉장고의 간식통을 꺼내서 흔들어보았으나 낌새조차 없다. 보통 때 같으면 어딘가 짱박혀 있다가도 순간이동해서 간식통 앞으로 오는 녀석인데.
베란다 창문, 현관문 모두 닫혀있는 그야말로 밀실이었으니 집밖으로 나갈 일은 절대 없는데 집안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코딱지만한 원룸에 숨을 곳도 없는데 어디로 간게야, 소리 질러보았지만 대답은 없고...

진짜 기가막혀서 찾기를 한 5분 했나, 정초부터 "집에 고양이가 실종되어서요..."라며 휴가를 써야 되나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그러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의 신발장을 열었더니 후다닥 뛰어나오는 노란 물체. 아침에 회사에 들고 갈 짐 챙긴다고 신발장 안의 쇼핑백을 꺼낸 적이 있는데 그 찰나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나는 쇼핑백이 있던 신발장 윗칸만 보았으니 아래쪽으로 서리가 들어간 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열었다가 바로 닫았는데 어찌 그 사이에 그리로 쏙 들어가버린건지...

본묘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와서 오히려 나무라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던데, 하도 어이가 없고 웃음만 나와서 궁디 팡팡 몇번 해주고 이미 늦은지라 정신없이 집에서 나왔다.

하, 고놈 생각할 수록 웃기네...-.- 사람이 그렇게 찾고 부르는데 대꾸라도 할 것이지. 사람을 이렇게 놀래키나.

워낙 유연해서 좁은 틈으로도 머리만 들어가면 잘 통과해서 들어간다는 종특까지 있으니. 다 큰 성묘도 한번 숨으면 이렇게 찾기 힘든데, 새끼 냥이들 집안에서 실종되면 찾기 힘들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하긴, 본가의 큰 집 데려갔을때도 안 보여서 한참 찾았는데, 알고보니 안방 침대 이불 속에서 자고 있었던 일도 있었지. 현관문 열린 잠깐 새에 집밖으로 나가서 잃어버렸다는 것도 이해가 가고...

신년 특집 서리 실종 사건은 이렇게 다행히 무사 귀환으로 끝났다. 내 수명만 조금 줄었을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