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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서리관찰일지

식신 고양이의 자율급식 훈련 이야기

서리는 식탐이 강한 고양이었다.
어떤 사료를 좋아할지 몰라 처음으로 산 뉴트로초이스 소포장 1kg짜리를 일주일만에 다 끝장낸걸 보고서야 '아 이거 좀 비정상적으로 많이 먹는구나' 싶어서, 덤으로 무른변 선물도 있었고 해서 (무른변을 잡기 위해 근본적인 원인부터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큰맘 먹고 시작한 자율급식 훈련 이야기이다. 처방식 사료라면 맛이 없으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그 비싼 로얄캐닌 인테스티널로 시도. (지금 생각해보니 잘못된 시도였다)

일주일 지나면서부턴 얘가 이러다 평생 배터지게 먹고 설사 작렬하는게 아닌가 너무 걱정이 되서 지켜보고 있는 내가 무척 괴로웠다. 경험자이신 분들에게 조언도 얻었지만 (과식하는 버릇 고치는데 무려 3-4개월 걸린 아이도 있다는 답변에 용기를 얻음;;) 과연 계속 이렇게 먹여도 되는 것인지 걱정을 했었다.

자율급식 훈련은 새로운 사료를 테스트 하기 위해 3주만에 중단되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어느 정도 효과가 미미하게 나타났지만 원하는 만큼의 효과는 없었다.

아래는 3주간의 식사량 기록.
정확히 24시간 기준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라서 러프하지만, 대략 성묘 식사량이 70-80g 정도임을 생각할때 얼마나 무섭게 먹어치웠는지 알수 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남은 밥 저울에 올려놓고 그램 수 잴때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경험 (-..-) 물론 응가는 거의 무른 변 + 설사. 변 상태만 나빴고 활동성이나 다른 건강에 문제가 없었기에 두고 봤을 뿐이다.

자율 급식 첫날. 꾸역꾸역 먹다가 결국 사료모양 그대로 구토. 구토한지 30분 후 또 밥그릇 앞에서 와구와구 먹어서 날 경악하게 함. 아이스크림 모양의 폭풍 설사.

11/15  150g
11/16  180g
11/17  100g
11/18  150g
11/19  150g
11/20  130g
11/21  150g
11/22  130g
11/23  140g
11/24  120g
11/25  140g
11/26  130g
11/27  120g
11/28  125g
11/29  105g
11/30  120g
12/1   100g
12/2   130g
12/3   90g
12/4   85g + a
 
약 3주 동안 천천히 어느 정도 줄긴 했지만... 식탐은 끝내 고쳐지지 않았다.
서리는 삼계탕집 박스 생활을 할때 다른 두 냥이와 함께 적은 양의 먹이를 나눠먹고 있었다고 한다. 보호소에서도 다른 많은 냥이들과 함께 있었으니...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서리의 식탐은 습식(주식캔)으로 바꾸면서, 대략 6개월간의 습식생활을 거쳐 건사료와 병행하게 되자 더 이상 찾아볼수 없게 되었다.
먹는 것이 문제라기보단
이제 이 집에서는 때 되면 떨어지지 않고 밥이 나온다는 것. 그 밥을 먹을 고양이는 자기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모양이다.

오히려 요즘엔 밥이 마음에 안들면 안 먹고 투정부리는 경향이... 이제 배가 부른건지... 집에 가서 밥그릇을 보노라면 기적이 벌어져있다. 두 가지 사료를 섞어주고 있는데 귀신같이 하나만 골라서 먹고 나머지 하나는 남겨놓는다. (그렇다고 절대 입에 안 대는 사료도 아닌데...단지 상대적으로 더 맛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버티고 있음) 콩쥐팥쥐였던가... 전래동화 중에 섞어놓은 두 가지 곡식을 반나절 만에 정확하게 구분해서 나눠놓으라는 계모의 요구에 새들이 날아와서 도와줬다는 얘기가 생각나는 광경이다...=ㄴ=


식신이라서 다행이야
먼 이야기지만 그래도 서리의 식탐때문에 다행이었던 것은 겨울에 감기와 결막염으로 아팠을때. 감기 때문에 눈물 흘리며 앓던 날에도, 결막염 때문에 빨갛게 눈이 팅팅 부었던 날에도 서리는 끼니를 거르는 일 없이 울면서도 밥그릇 앞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약의 효과도 있었겠지만 나는 전적으로 90%는 밥심이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