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개천절에 데리고 왔으니까 서리가 저희 집에 온지도 딱 3년이 되었었습니다. 나이로 치면 이제 만 네 살 정도... 집에 데려왔을 때가 1살 정도였으니까요. 정확한 생일을 몰라서 데려온 날 10월 3일을 새로운 생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집에서 독립을 하면서부터 고양이를 한마리 데려와야지 생각했었는데 취향이라면 아메숏이나 그 비슷한 태비 무늬였거든요. (오래전에 보고 마음을 빼앗긴 냥이가 비너스님댁의 sheeta였습니다) 그래서 노랑둥이를 데려올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우연히 모 보호소의 냥이들 사진을 구경하다가 저 사진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갓 보호소에 입소했을때의 서리 사진으로 아직 앳된 얼굴이 남아있지요. (얼굴도 작고... 뱃살도 없고...)
왠지 저 눈빛이 마음에 들어서 문의를 했더랬지요. 돌아온 답변은 "착한 아이이긴 하나, 애교는 없다. 사람을 잘 따르지 않아 적응하는데 좀 오래걸릴것이다" 였습니다.
일단 실제로 한번 봐야겠어서 보호소에 갔더니...왠걸 노랑둥이 투성이라 어느 녀석이 어느 녀석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서리도 그 새 컸는지 사진이랑은 완전 다른 인상이구... 그래도 내가 찍은 녀석인데 못 알아보면 큰일이겠다 싶어서-_-입가의 카레로 얼굴을 기억하고 접근을 해봤습니다. 다행히 사람 손을 죽어라 싫어하진 않더라구요. 물론 몇번 만지니 쌩- 하고 도망갔지만요.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는 친화적인 4개월짜리 꼬맹이한테도 살짝 맘이 갔었지만, 서리는 어린 애들한테 밀려서 다른 커뮤니티에 입양글도 안 올라오는거 같고, 애교 없는 다 큰 애를 누가 데려갈까? 싶어서 애교 좀 없으면 어떠랴, 나는 혼자 사색하는 냥이가 더 좋다 하는 맘으로 덜컥 데려왔는데...
막상 데려오니 이녀석은 그닥 시크하지도 않고 도도하지도 않고, 우아한 냥이와는 백만년 먼 녀석이었습니다. 식신 수준으로 밥을 먹어치워서 무른변 작렬에 밤만 되면 미친듯이 뛰어놀고 낯설어서 울기도 엄청 울고... 그러면서도 겁은 많아서 제 눈치를 보고.
그런건 차차 적응하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문제는 약을 먹이거나 병원에 데려가거나 할때였습니다. 제압하는 법을 몰라서 어설프게 잡고 약먹이다가 발톱에 찍히고 오히려 사이만 나빠지고... 이동장에 안 들어가려고 도망다니는 애 쫓아다니다가 싸워서 냉전도 해보고 -_- 친구가 사태를 한마디로 정리해 준 '사람이 고양이랑 똑같이 놀려고 그런다' 라는 말에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여튼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어요. 누그러진 경계심이 다시 생기는 건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제가 서리를 다루질 못해서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에 '능력도 없으면서 사람을 안 따르는 성묘를 데려온게 잘못이었을까...', 우울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이렇게 서로에게 불편한 기간이 지나고나니 어느 순간 부터는 그렇게 편해질 수가 없더라구요.
지금은 그냥 약 먹일거 다 먹이고, 들어서 이동장에 쑥 집어넣습니다. 이젠 제가 뭔 짓을 해도 경계하거나 겁먹거나 그러지 않아요. 단지 귀찮아 할 뿐이지... 오히려 요즘은 뭔가 원하는게 있으면 얄미울 정도로 뻔뻔하게 요구할 줄도 알죠. 처음 일년 간은 과묵한 애가 아닌가 했는데, 요새는 냐옹냐옹 어찌나 말이 많은지... 부르면 대답도 할 줄 알고, 새끼 고양이가 낼만한 끠웅끠웅 불쌍하게 우는 소리로 땡깡도 부릴 줄 압니다. 서리는 개냥이는 아니지만,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냥이는 아니었습니다. 단지 애정을 줄 사람이 없었고, 겁이 많았던 것 뿐이었나봐요.
날씬한 몸매는 어디 가고 D라인을 자랑하는 한량 냥이가 되어버렸지만, 입냄새도 쩔지만...
그래도 세상 어느 냥이보다 더 이뻐보이네요.
앞으로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같이 살았으면.
생일 축하한다. 서리야♥
사랑한다. 서리야♡
ps. 예전에 모 게시판에 썼던 글을 좀 수정해서 올린건데 다 쓰고 보니 오글오글하지만... 그래도 서리 생일이니 오글오글 이해해주십쇼 -_-